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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1년은 나름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두 학기 동안 수강했던 모든 과목 A를 받고, 내가 치뤄야 할 퀄리파잉 4가지 퀄리파잉 시험 중 첫번째 method 파트를 통과했으니 말이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느냐고 가족을 많이 챙겨주지 못했다. 처음 맞이하는 3개월에 달하는 긴 여름방학은 공부에 대한 욕심은 과감히 접고 오롯히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계획했다. 3살 예성이와 와이프를 위해서 말이다.


보스턴에 가서 4일 정도 머물면서 하버드 대학교 동상 신발도 만져보고, 오이스터가 얼마나 맛난 음식인지도 확실히 깨닫고, 새뮤엘 애담스 맥주공장가서 신선한 미쿡 맥주 맛도 봤다. 얼마 전에는 같이 박사과정에 들어온 Marsha라는 나이가 좀 있는 미국인 아줌마의 초대로 펜실베니아 호수가 근처의 호화 펜션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같은 Bloustein 박사과정 친구들하고 하루종일 호수에서 폰툰보트, 모터보트를 타고, 워터스키도 난생 처음 타면서 마치 TV에서나 나올 것 같은 미국식 여름 휴가를 만끽했다. 너무나 럭셔리한 숙소에서의 하루 덕분에 나도, 와이프도 백퍼샌트 리프레쉬가 되서 올 수 있었다. 예성이도 Katie의 4살 아들인 Tobi와 재미있게 놀면서 좋은 또래 친구를 하나 얻었다. 


고대 건축과 뉴욕 동문회 덕분에, 조지 와싱턴 브릿지가 보이는 멋진 피크닉 장소에서 먼저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고대 선배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같이 대학때 수업을 들었던 후배녀석은 어느덧 동문회장이 되어 선배와 후배를 이어주면서 좋은 만남의 장을 잘 가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멋진 커리어를 쌓고 계셨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고, 하버드, 콜룸비아 등에서 석사를 마치고 본인이 하는 일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의 살아있는 눈빛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흔한 '동문회자리 = 술자리'라는 컨셉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라는 것이 정말 좋았다. 


지난 주말에는 고대 총동문회에서 마련한 뉴욕 롱 아일랜드에서 낚시를 가는 행사에 참여했다. 고대와 연대가 함께하는 자리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는데, 총 130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참여한 아주 왁자지껄한 자리였다. 배를 타고 근해에 나가서 선상낚시를 하는 행사였는데, 와이프는 광어를 세 마리나 잡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다. 참고로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강낚시를 간 적이 많아서 내가 낚시를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와이프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예성이도 처음보는 형아랑 어부바 놀이를 하면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완전히 뻗어버릴 정도로 잘 놀았다. 웃기는 건 예성이가 행사가 끝나갈 무렵에 알게 된 연대친구한테 푹 빠져서 그렇게 잘 놀았던 형은 쳐다보지도 않더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 친구도 럿거스에서 학부를 다니고 있더라. 예성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친구가 하나 더 늘은 샘이다. 끝나고 나서 시도했던 꽃게잡기는 소득이 없었지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이 모든 일들은 참 많은 부분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점에서 말이다. 한국에서 연구원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좁은' 인간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자기 일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건 좋지만, 그것만 알고, 그것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예전에 지금 공주대 교수를 하고 있는 김경석 교수님을 뵜을 때 이 분 참 '넓게' 사신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분이 문득 생각났다. 왜, 어느새 내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걸 모른다면 다시 한국에 가서도 또 '좁은' 인간이 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그걸 완전히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가지,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분명히 깨달은 게 있다. '여유'가 중요하다는 거다. 바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바쁘다는 것이 내가 보내고 있는 1분 1초의 가치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사일로 바쁠 때, 나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 6시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서 예성이랑 와이프와 시간을 보내고, 예성이가 잠들고 나면 다시 회사로 일하러 가는 식이었다. 통상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그런 식으로 보냈던 것 같다. 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식으로 일과 가족의 균형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건 나를 갉아먹는 일이다. 재미있고 더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때 뭐 했는지 생각해봤을 때 내 머리속에는 단 두 가지 기억밖에 없다. 공부와 축구. 맞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고등학교 생활의 지상목표가 되어서 그것만 바라보고, 그것만 생각하고 지낸 결과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나이가 들어 무덤에 들어갈때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게 뭘까라는 질문 말이다. 회사일, 연구 밖에 없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요새 SOP를 도와주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덜도 더도 아니고,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책이라고.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던지, 무슨 차를 끌고 있던지, 어떤 학교를 나왔던지, 무슨 브랜드를 입던지.. 그리고 무슨 연구를 하던지.. 그런 것들은 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마찬가지일거다.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생각을 공유하는지, 뭘 같이 하는지,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와 같은 것들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성이가 처음보는 형한테 어부바를 해달라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바로 저런게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이야기책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신나고 즐겁고 '가슴 뛰는' 경험으로 채워진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잘난 맛에 세상을 살다가 혼자서 막을 내린 쓸쓸한 독백록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같이 생각을 하고, 같이 경험을 하고, 진심으로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어가는.. 그런 순간 순간들로 밀도있게 꽉 채워진 그런 삶의 진액이 묻어있는 이야기책 말이다. 


36살,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빨리 깨달았다. 아직도 내 인생 이야기의 2/3는 아직 안 적혀있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도 알고 싶은 사람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내 인생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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