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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부하는 게 천성인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뭔가 학문적인 호기심이 왕성해서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어하는 그런 천성적인 학자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 석사를 마치고 연구원에서 6년 정도 연구를 하다보니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슈에 대해 어드레스 하고 싶은지, 어떤 모습의 Profession이 되고 싶은지 확실히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이런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SOP가 아니었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던 덕분에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분야에 대해서 완전 밑바닥부터 탄탄히 다지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별 관심도 없는 분야에 대해 쓸 시간을 내가 궁금해하는 분야를 더 깊게 파고드는 데 쓰고 싶다는 게 맞는 표현일거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나한테 완전 이상적이다. 미국 박사과정에서 1년을 보내고 난 후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요약하자면 딱 이거다. 미국에 오기 정말 잘했다.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공부할 맛이 난다는 거다. 지금 유학준비를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후배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보고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공부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 그려보면서 다시한번 자극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는 미국에서 일년간 박사공부를 하면서 몇 가지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스케치하듯이 적어볼까 한다. 


첫째,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한국처럼 학교가 짠 수업의 틀에 억지로 나를 꾸역꾸역 짜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학점을 채우려고 별 관심도 없는 수업까지 들어야하는 경우가 꽤 빈번하리라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기 Blousetin School의 경우, 졸업하기 위해서 꼭 들어야 한다고 명시한 과목은 단 4개다. 이 과목들은 모두 박사과정생으로서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아주 fundamental한 것들을 가르치는 수업이며, 모두 퀄리파잉 시험 준비와 직결된 수업이다. 내 경우 이 4개 수업 이외에 추가로 9개 수업을 듣게 되면 졸업을 위해 코스웍으로 채워야 할 학점 걱정에 대해서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진다. 통상 1학기에 3개 혹은 많으면 4개 수업을 듣기 때문에, 4개 학기, 즉 2년이면, 총 13개 수업을 듣는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채워야할 학점은 72학점(수업으로 치면 24개)이지만, 석사때 들었던 수업이 학점으로 인정되는 부분도 있고(최대 24학점이나 석사때 들은 수업의 특정 퍼센티지까지만 이전가능), 리서치 크레딧 24학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여기서 아마도 다른 대학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이사항 두 가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이 9개 수업 중에서 절반만 블러스틴에서 들으면 된다는 거다. (최소 24학점, 즉 8개 수업을 블러스틴에서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4개 수업이 필수코스웍을 통해 채워지기 때문에 4개만 블러스틴에서 들으면 된다) 즉, 나머지 4개 수업은 굳이 이 블러스틴 스쿨이 아니라 럿거스내 다른 학과, 혹은 다른 대학에서 들은 수업으로 공식적으로 학점으로 인정이 된다는 거다. 블러스틴 스쿨에 있는 Geography라던가 social works 학과에도 뛰어난 교수들이 있지만, 특히 여기 블러스틴에서는 근처에 있는 Princeton, Columbia, UPenn, NYU에 가서 수업을 들어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Exchange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런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이런 대학에서 우리 학교로 와서 수업을 같이 들었던 경험도 있다. 내 경우에도 이번 학기에 Princeton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각 학교별로 관심있는 교수들을 적어논 서류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앞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수업을 듣고, 내 연구주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것, 상상만 해도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실 바로 이런 느낌이 나를 한 순간도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슴 설레면서 공부를 할 수 있기에 나는 힘들고 피곤해도 정말 정말 행복하다. 미국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 


둘째는 이 9개 수업 중 2개 수업을 Independent study라는 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교수랑 합의해서 이런 저런 내용을 공부한다고 스스로 실라버스를 짜고 그걸 공부한 뒤에 시험이든 텀페이퍼를 통해 코스웍 학점으로 인정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박사과정 동안 2개의 indepenent study를 들을 수 있는데, 내가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바로 그 specific한 부분에 대해서만 딱 찝어서 공부하고, 그걸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말 끝내준다. 내가 공부할 거, 리딩 리스트를 정하고, 딱 그것에 대해 교수랑 이야기하면서 공부를 하고 덤으로 학점도 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지금처럼 억지로 듣기 싫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찾는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건 곧 나 스스로 그런 것들을 정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즉, 럿거스 블러스틴 스쿨에는 정해진 커리큘럼이라는 건 없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감안하여 전부 다 내가 판단해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주 특징적인 부분이 있는데, 바로 Program of Study 미팅이다. 이게 뭔가하니, 내가 앞으로 이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들을지 퀄은 언제보고, 논문을 언제 쓸지 등등의 대략적인 플랜을 적어서 그걸 놓고 하게 되는 미팅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미팅은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이 첫 1년(즉, fall + spring)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가지게 되는데, 4명의 커미티 멤버를 스스로 구성하는 걸로 시작된다. 박사과정 디렉터를 맞고 있는 교수와 내 지도교수에 더불어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2명의 교수로 정하게 된다. 즉, 각 박사과정 학생마다 서로 다른 program of study commitee를 가지게 되는 꼴이다. 이 네 명의 커미티 멤버는 내가 무슨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고, 내가 그런 부분을 공부 또는 연구하기 위해서 이들이 줄 수 있는 조언을 주는 적극적으로 해 주는 일종의 서포터이자 어드바이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Program of Study 미팅은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이런 건데, 어떤 리소스들을 이용해서 어떻게 배워나가고 연구해나갈 수 있는지를 상담받고 조언을 구하는 그런 모임이다. 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플랜을 짠 다음에 그걸 들고가서 내 계획을 말하고 허락을 받는 그런 성격의 미팅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잡아놓은 플랜을 보고 이들 4인이 조언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죽여주지 않는가, 내 옆에서 조언을 줄 수 있는 4명의 교수가 붙어있는 꼴이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여기 Bloustein School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깊게 파는 것에만 오롯히 집중할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여러가지 점에서 보여줬다. 아마 다른 미국 대학원 및 학과도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꼭지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미국 대학원 수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던 필수코스웍을 예시로 들어 이야기를 풀까 한다. 즉, 박사생들이 듣는 것으로 디자인된 수업들에 대한 스케치라고 보면 되겠다. 


앞서 말한 4개 필수 코스웍은 Advanced level의 방법론 수업 2개(1개는 수업이 정해져 있고, 1개는 자율적으로 선택)와 theory 수업 1개, 그리고 퀄을 마치고 나서 박사논문을 시작하면서 듣게 되는 Advanced Scholarly Research 수업 1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 4개 수업의 퀄리티는 정말 상상 이상이다. 학교에서 들으라고 의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가 찾아서 들을 만한 그런 가치있는 수업들이다. 한 수업 한 수업마다 미친 밀도로 수업이 진행된다. 아마 이건 미국의 다른 학교 박사과정 수업들도 비슷할 거다. 미국 대학원의 수업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할 만한 사람들을 위해 그중에서 한 개 수업에 대해 좀 상세하게 적어보겠다. 박사과정 이론 필수과목인 Bob Lakes의 Planning, Public Policy and Social Theory 수업이다. 


이 수업은 10개에 달하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수업은 이런 모습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약 8명 정도. 수업이 시작되서 교수가 오면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슈를 던지라고 한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던진다. 교수는 그 키워드만 화이트보드에 적어나간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화이트보드가 키워드로 꽉 차게 되면 교수는 한 마디를 한다. 자, 이제 시작하자. 바로 디스커션을 하자는 거다. "나는 이걸 이렇게 봤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누군가 던지면, 바로 누군가 꼬리를 잡아서 이어나간다. "내가 보기에는 그건 이런거 같고, 이런 부분은 니 생각이랑 조금 의견이 다른데 누구 나랑 같은 식으로 본 사람은 없냐, 또 누군가 받아서 이어간다. "니네 둘 의견도 일리는 있는데, 나는 얘가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한 걸 보고, 그건 이렇고 저런게 사실 핵심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까지도 교수는 주의깊게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보고, 노트할 부분을 적을 뿐 중간 나서서 개입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교수가 입을 여는 순간은 토론이 이어지지 않거나, 특정 이슈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혹은 뭔가 학생들이 중요한 이슈를 놓치고 있는 그런 순간들이다. 이때 교수가 하는 일도 생각할 부분을 하나 던지는 정도다. "그런데 얘는 여기에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라는 식이다. 교수가 '그건 이거다'라는 식으로 마치 답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가 없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지식을 전달한다는 게 아니라,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쿡쿡 질러서 내 생각의 근육을 움찔움찔 자극시키는 역할을 한다는게 적절하겠다.


당연히 토론만 하면 끝이 아니다. 이 수업에서는 학기 중에 총 4개의 에세이와 1개의 파이널 페이퍼를 써야 한다.  쉽게 말해서 2주에 한번씩 8-10 페이지(double spaced) 정도의 에세이를 쓴다고 보면 되겠다. 매주에 책 반권(100~150 페이지) 혹은 책 한권을 읽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거에 벌벌 떨 필요는 없다. 인터네셔널이던 원어민이던 똑같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이 수업 끝나고 나서 주변에 이 수업을 꼭 들으라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다 똑같더라. "죽을만큼 힘들텐데, 진짜 그만큼 들을 가치가 있는 수업이다". 얘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에세이가 소위 말하는 '감상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Bob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참 이 사람 정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의 에세이 가이드라인을 아래에 적어두었다. 바로 이런 에세이를 2주에 한번 꼴로 써야한다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1개 수업에서 말이다.  


1. Provide a brief summary or overview of the author’s argument. This summary is not the central focus of your essay; it merely establishes the context of your essay with respect to the particular work you’re discussing.

2. Identify and discuss the author’s underlying assumptions—the author’s basic premise(s) and the starting point(s) for his/her analysis or discussion.

3. Consider the implications of the author’s starting assumptions or premises for his/her argument. What questions do these assumptions open up or close down? How do these assumptions influence the author’s argument? How does the author proceed from assumptions to conclusions?

4. How do the author’s assumptions or premises differ from other possible (plausible) assumptions, approaches or frameworks for analysis?

5. What are the strengths and/or weaknesses of the author’s discussion? What observations does it produce? What insights does it make available? What holes, ambiguities or unanswered questions does it contain?

6. What are the implications of the author’s argument: for knowledge or understanding? for planning and public policy? for yourself?

7. Is any of this important? (Why) does it matter?

8. What is your overall evaluation of the author’s work? Is it helpful, and why or why not? Does it open up new questions, provide useful information, and/or lead to new ways of thinking—or not? Support your evaluation with reasons and/or examples.

Soruce : Syllabus from Bob lakes (Planning, Public Policy and Social Theory)


마지막으로 세 번째 꼭지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토론수업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런 토론 수업에서 제대로 리딩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 더 멍청한건 사실 할말이 있는데 유창하게 영어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데 좀 버거움을 느낀다고 주저주저하고 앉아있는 거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뭐를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있으면" 누구라도 수업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토론에서 뭔가 내가 의무적으로 한 두 마디라도 말해야 하는데 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내가 말 안하면 학점에 영향이 있겠지라는 식으로) 다른 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가 않는다. 내가 할 말만 내밷으면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들 수도 있다. 솔찍히 말해서 내가 첫 2-3주 정도까지만 해도 딱 저 모습이었다. "아, 괜히 이런 말 꺼내서 바보되는거 아니야"라는 걱정을 달고 주저주저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놈들이 이야기하고 앉아있는 내용을 좀 들어보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짜 아주 주절주절 5분이상 쉴새없이 말을 하고 있는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근데 이놈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슬슬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캐치를 못 했는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좀 너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더란 말이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다. '너 임마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거냐고'. 놀랍게도 이놈이 제대로 답을 못하고 횡설수설한다. 바로 이때 좀 감을 잡았다. 영어를 잘 한다고, 유창하게 이야기한다고 이놈들이 지금 핵심을 꿰뚫는 그런 insightful한 코멘트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웃기게도 대부분 지가 지금 무슨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더라. 갑자기 내가 왜 주저하고 있는지 확 짜증이 났다. 그리고 내가 왜 겁을 내고 있는지 참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이 나보다 영어를 잘 할지는 몰라도 (당연하겠지), 그것이 그네들이 나보다 지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다는 건 아니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새삼 확실히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토론에 대한 두려움이 싹 없어졌다. 갑자기 얘들이 한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내 후배들처럼 보이더란 말이다. 


사실 말빨이 좀 딸리더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해서 의미 있는 토론에 기여할 수 있다. 뭐 이런 식이다. "와 그 부분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아..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런데 나랑 같은 생각 한 사람은 없니?" 혹은 아예 대놓고, "야, 그거 좀더 쉬운 말로 이야기해봐. 그래서 이거랑 저거랑 얘가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거야?" 난 후자의 식이었다. 다른 많은 인터네셔널들처럼 내가 고급영어를 구사하면서 화려한 말빨로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없기도 하거나와 그건 내 취향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 친구가 아주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면, "그래서 니 핵심이 뭔데? 이거라는 거야?" 라는 식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혹시나 오해할 것 같으면, "내가 지금 잘 캐치하지 못해서 그러는데.." 라고 먼저 말하고 나서 '너 지금 대체 무슨말 하고 있는거니?'라고 물어보면 된다. 주저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냥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걸 바로 토해내면 된다. 마인드를 이렇게 세팅하면 슬슬 토론이 재미있어진다. 말할 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클리어하게 전하는 부분에만 오롯이 신경쓰면 된다. 구구절절히 그래서 어쩌고 이래서..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때려 박으면서 물어봐서 다른 애들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충분히 클리어하게 전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건 교수한테 대할 때에도 전혀 어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심지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럼 이건 어떻게 되는거야?" 라고 물어봐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질문은 난 너에게 반박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니 생각을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부연해달라는 정도로 받아들여지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라면 정말로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아마 교수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용히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가서 물어보는 식 정도가 최선일꺼다. 여기서는 수업후에 그렇게 조용히 찾아가서 물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야, 그걸 수업중에 이야기하지 그랬어. 그래야지 다른 애들도 좀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한가지 오해하지 말고 확실히 인지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얘들이 하는 학술적인 토론은 니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싸우는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의 '토론수업'은 근거에 기반해서 나름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텍스트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것이 취지다. 그래서 얘네들은 토론에 '기여'해 달라고 한다. 니가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 수업 가이드라인에는 니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고, 다른 애들이 말하는 거 무시하지 말고, 좀 닥치고 남들이 말하는 내용 경청할 줄 알라는 내용이 적혀있을 정도다. 생각해보자. 여기에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8명의 학생들은 전혀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다. 누구는 철학, 누구는 도시계획, 누구는 경제학, 누구는 political science 등등 정말 다양하다. 이런 애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의 스탠스에서 텍스트를 읽고 그 해석을 공유하는 자리란 말이다.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여기, 미국, 그리고 Blostein School에서 수업중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과 이리저리 다르니, 많이 고생할꺼야'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내가 조언을 해 준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달리 정말 니가 공부하고 싶은거 원껏, 제대로, 아주 바닥부터 저 끝까지 깊이있게 배울 수 있으니, 고개 들고, 정신 바짝 차려! 니가 한국에서처럼 수동적으로 배운다는 생각을 가지거나, 좀 안다고 목에 빳빳히 힘주고 있다면 너에게 여기는 정말 지옥같을 꺼야. 하지만, 니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 남들 눈치보지 않고, 솔찍하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 줄 알고,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면, 여기서 정말 무궁무진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이다. 하나만 더 이야기드리고 끝내겠다. 바로 이거다. "미국 대학원에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가시기 전에 공감버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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