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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블로그를 감히 시작했던 건 아주 단순한 취지였다. 유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특히 SOP에 대해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검색해보면 정말 주옥같은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토플이나 GRE와 달리, SOP에 대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과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먼저 미국에 유학을 간 선배들의 조언을 받기 전까지는 정말 맨땅에 해딩하는 식으로 고생을 했었다. 정말 답답한 건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누구나 알 만한, 그래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유학준비를 했는지 적어둔 글들의 경우에도 언제 뭘, 어떻게 준비했다는 정도의 내용이 대부분이라 Statement of Purpose, Personal History Statement를 쓰는데 직접적으로 참고할 만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추천서와 CV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시간은 없고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SOP 샘플들을 검색해봐도, 이게 대체 합격한 애가 쓴 좋은 샘플인지 아닌지도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미국대학에 합격한 중국애들 샘플을 모아둔 파일의 경우, '이게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에서 좋은 샘플이라고 공개하는 것들을 봐도, 딱 1개를 빼놓고는 그냥 공개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좋은 샘플인지 친절하게 적어준 경우도 거의 없었다. 아쉽게도 그 1개 마저도 내 전공과는 거리가 멀어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 유학준비하면서 실제로 합격한 사람들이 지원했던 자료를 통째로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진짜 간절해지기 시작했던 건 딱 이 즈음이었다. 아마, 이건 유학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드는 생각일 거다. 


다행스럽게도 난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내 주변에 최근에 먼저 미국에 유학을 간 선배들이 꽤 있었고, 더욱이 몇 분이 나한테 먼저 다가와서 참고하라고 본인의 SOP를 보내주고, SOP 초안을 보내보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이 분들의 도움과 조언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SOP는 이렇게 쓰는구나"에 감을 잡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을 들였을 거다. 아니, 아마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끝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풀브라이트와 국비장학금에 모두 합격했던 것도 모두 이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사한 도움을 받으면서, 나도 합격하고 나서 꼭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게 이 블로그의 시작이었다. 


2017년 8월 무렵 블로그를 만들고, 내 유학서류 일부를 많은 분들에게 보내드리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SOP에 대한 조언을 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블로그에 쓴 글들은 대부분 내가 메일로 받은 질문들이나 SOP에 대한 조언을 주는 과정 속에서 "아, 맞다. 나도 이 부분이 참 궁금했었지"라고 느끼면서 적게 된 글들이다. 내가 근거없는 허튼소리를 하거나, 그런 소리를 듣고 앉아 있는 것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적어나갔다. 예전에 유학준비를 하면서 모아둔 자료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내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80% 이상이 다 그런 식으로 링크와 출처를 적어가면서 쓴 것들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 믿을지 모르지만 - 한개 글을 적는데 최소 3시간, 많으면 2-3일이 걸리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는 나몰라라 하고 다 접어버릴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시간에 내 공부나 하는 게 맞지 않냐는 생각도 문득 문득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관심있게 들여다 보지 않는데 혼자 원맨쇼하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지탱해줬던 건 많은 분들이 남겨준 댓글들 덕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단순히 인사치례로 고맙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마음이 전해졌다. 남사스럽지만 예를 들자면, "실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료들은 많지만 제가 궁금했던 부분들을 해소해주는 유일한 블로그인것 같네요".  (2017.9.11. MJ님의 댓글), "여타 사이트에 가도 서로 질문하는 글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정보다운 정보를 찾은 것 같습니다." (2017.9.6. 미박님의 댓글). 이런 댓글을 보면서, 아 그래도 뭔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간은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는 공간이 없구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블로그를 만들어서 글을 올리고, 코칭을 해 주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이 하나 있다. 정말 많은 새로운 분들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코칭을 하면서 친구나 동생처럼 가까워진 분들을 차치하고라도, 나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훨씬 뛰어난 분들을 알게 되었다는 건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국비유학 합격자, 풀브라이트 합격자만 대략 10명 정도고, 나도 떨어졌던 고등교육재단 장학금 합격자도 있었다. 나와 비슷하게 국비유학과 풀브라이트를 동시에 합격한 친구도 있다. GRE 라이팅 4.5를 받은 후배를 알게 되었고,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창의적인 SOP를 쓴 능력자도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알게 된 것이 너무 신기했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어느새 인연을 쌓아가는 일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문득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고무적인 건 덕분에 그간 두리뭉실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따뜻한 선순환"을 어떤 식으로 키워나갈 수 있을지 가닥이 잡혔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나중에 합격하고 나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과 콘텐츠들 이상의 빛나는 것들을 공유해줄 수 있을 거다. 모이게 되는 정보의 퀄리티는 당연히 장난이 아닐 거다. 더 신나는 건 이게 시간이 지나서 선순환을 한 바퀴, 뒤 바퀴 해 나갈수록 쌓이는 정보들이 더욱 엄청나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솔찍히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이런 가능성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취지였었다. 내 주변의 플브라이트 합격생 친구들을 쿡쿡 찔러서 같이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같이 해 주면 감사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3명이 도와주겠다고 말해준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할 따름이지만, 이런 식으로 한계가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이제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지 좀 확실히 감이 온다. 다행이다. 그동안 했던 것들이 뻘짓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이 약 20개 정도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20개 글이 아니라, 많은 자료를 읽어보고 내 생각과 비교해가면서 4-5시간, 혹은 그 이상을 들여서 신중하게 적은 글들이 20개라는 소리다. 시작은 Statment of Purpose에 대해서 였는데,  어느새 Personal History Statement, 추천서, CV까지도 중요한 내용들은 다 적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 이상 추가적인 정보성 글을 올릴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반복해서 올려서 읽는 분들의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을 뺏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 올리게 된다면 1) 뭔가 정말 중요한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거나, 2) 공통적으로 받는 유학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진짜 할 만큼 했다. 


물론 이 말이 그냥 블로그를 방치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유학서류에 준비에 대한 새로운 글이 올라올 일은 별로 없겠지만, 어드미션이 끝나고 나서 어떤 새로운 내용들을 올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몇 가지를 계획하고 있으니 말이다. 따뜻한 선순환이 정말 가능한지 아닌지는 그때 가보면 알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될 때, 어드미션을 끝낸 분 중에서 끈끈하게 지냈던 분들과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페이스북이 될지 텀블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할 것 같아서 말이다. 간간히 어드미션을 끝낸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들도 올려볼까 한다. 아주 말랑말랑한 이야기들 말이다. 미국에 들어오기 전에 준비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것들이라던가 (정말 그 간단한 걸 하고 오지 못해서 몇 번이나 뉴욕대사관을 왔다갔다한 이야기라던가), 미국에서 로컬 테크니션을 데리고 used car를 사러 간 이야기라던가,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는 아마존 프라임 이야기라던가 말이다. 어쩌면, 대학에 다니면서 외부 펀딩을 받는 법에 대해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3년차에 TA, RA를 하지 않고 어디선가 외부펀딩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요새 NSF 등 몇 군데를 염두에 두고 슬슬 준비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어느새 인연을 쌓아가는 일이 되서 기쁘고, 좋다. 그냥 좋다. 메일 몇 통을 주고 받은 거지만, 신기하게도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보다 더 깊숙한 부분까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SOP를 통해 그 사람의 민낱을 볼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고 '엮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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